영화에 대한 짧은 저의 생각을 정리한 포스팅입니다. 제 리뷰는 반드시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시려는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조금씩 아껴두었다가 보기 시작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주말에 <아무도 모른다>부터 시작했죠.
저는 일본 특유의 색감과 조용한 묘사를 좋아합니다. 남들은 지루하다고 하지만, 그 서정적이면서도 조용히 그려나가는 서사가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영화 <아무도 모른다> 역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포스터만 봐도 대략적인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정보를 얻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편견 없이 보고 난 후 나만의 해석을 가지고 영화를 되짚어보는 것을 선호하곤 하죠.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하지만 등장인물의 감정과 묘사는 허구라며 영화 초반부터 문구로 밝힙니다.
아이가 많다는 것을 숨기는 엄마, 여기서 살아가기 위한 룰을 정하다.
이사를 온 첫 날, 엄마와 아들은 주인집에 인사를 하러 갑니다. 남편은 일을 하러 멀리 출장을 갔고 아들은 하나라면서 말썽을 부리지 않을 거라고요. 주인도 아이들이 많으면 주변 이웃에게 민폐가 될 것이라며 염려를 표합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조용하고 공부도 잘한다며 주인을 안심시킵니다. (이때 엄마는 어른답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철이 없는 느낌을 표현한 걸까요? 아님 이 배우가 원래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오고 난 뒤 움직이는 여행용 가방 2개를 엽니다. 가방 안에서는 어린 소년과 소녀가 웅크렸던 몸을 펴면서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여동생도 데리고 오죠. 식구는 엄마와 장남 아키라, 장녀 교코, 삼남 시게루, 막내 유키가 있습니다. 엄마는 여기서도 소란을 피우면 또 이사 가야 한다며 한 가지 룰을 정합니다. 장남 아키라 외에는 외출이 금지되며, 나머지 3명은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고요. 다만 장녀 교코는 빨래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베란다(발코니)에는 나가는 것을 허용한다고 말입니다. 장남 아키라는 익숙한 듯이 집안일을 하고 한자 공부를 하는 등 조용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냅니다.
학교에 가고 싶은 아이들, 행복을 찾고 싶은 엄마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는 것은 여러 대사로도 묘사가 됩니다. 장녀인 교코는 엄마에게 학교 가고 싶다고 말하자 엄마는 머리를 빗질해주며 학교는 재미가 없고, 너희들은 아빠가 없어서 가도 왕따를 당한다며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키라 역시 엄마에게 학교 가고 싶다고 요구하자 학교에 가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이 많다며 일축합니다. 아키라는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부럽게 쳐다보고 학교 근처에 서성이는 장면도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런 바람에도 엄마는 일하고 오다가 늦기 일쑤이고, 한 달 이상 생활비만 주고 집에 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고 싶다며 아들에게 자신을 이해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생활비가 떨어져 가자 아키라는 예전 아빠(?)들을 찾아가서 돈을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엄마를 찾는 등 여러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성(姓)'이 바뀌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재혼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러워지는 집안, 헤져가는 옷을 입은 아이들
처음에 엄마가 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깨끗하고 말끔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계절의 변화와 길어버린 아이들의 머리, 그리고 낡고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의 상태로 표현됩니다. 부모의 부재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있어요. 생활비조차 없어서 폐기된 음식으로 연명하고 가스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주변 공공 화장실과 공공 수돗물로 몸을 씻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중간중간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 순수와 비극의 극명한 대조
엄마가 발라준 매니큐어가 없어지고, 모든 게 희미해질 즘, 엄마가 만들어놓은 규칙도 점점 퇴색되어 갑니다. 시게루(3남)는 발코니에서 놀고 유키도 밖에 나와서 뛰어놉니다. 월세가 계속 밀려서 찾아온 주인도 집안 상태와 아이들을 보며 할 말을 잃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주변 어른들이 대책을 세우고 도움이라도 줘야 할 텐데, 영화에서는 '죽지 않을 만큼'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연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같이 있는 게 행복한 아이들. 만약 사회 복지 시설이나 경찰에게 알렸다간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예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권과 사회복지 차원에서 생각하다
아키라는 14살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습니다.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 도둑질이나 나쁜 환경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경우 사회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등록되지 않은 아동이 살해되고 방치되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위기출산 임산부에 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죠. 문제는 이러한 법이 있어도 도움을 구하지 않으면 받지를 못하는 거예요. 주변 지역사회가 이러한 사람들이 있는지 돌아보고 관심을 쏟아야 외면당하는 일이 적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각박하게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 다니면서 이웃의 상황은 알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쉽게 선악을 만들지 않도록 관찰자 시점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실화를 다큐멘타리처럼 모든 요소로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비난과 장남 아키라에 대한 질타를 거두려는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쉽게 선악으로 구별 짓고 욕할 순 있어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깐요. 그런 의미에서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 더 충격으로 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현상에 대한 감정 과잉을 덜어내고 앞으로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끔 하는 것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